오늘은 제가 왜 47이라는 나이에 중국어학연수를 왔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 저의 사업과도 연관이 되는 글이라 조심스럽지만
일기 형식의 게시판이다 보니 기록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적습니다.
먼저 중국에 온 배경을 설명드리기 전에 제가 살아온 짤막한 이야기 부터 해야 겠군요.
위에도 이야기 했듯이 저는 47세의 나이로 아내와 중3.중1 두 공주를 두고 있는 가장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은 아니지만 상장회사에 취직해서 7년정도 근무를 했습니다.
개인사업에 뜻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대구에 있는 경북대학교 앞에서 레스토랑을 했었습니다.
한 2년정도 하다가 IMF가 일어나기 바로전에 가계를 넘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 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수 받으신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제가 대구에서 제일 뛰어나다는 경북대학교 앞에서 가계를 하면서 느낀 점은
그 당시만 해도 대학교앞에 pc를 두고 가계를 하거나 pc방 형태의 점포가 대구에는 한개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만 둘때쯤 저의 가계 뒤편에 지금의 pc방 형태의 pc카페가 대구에서 처음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컴퓨터쪽에 관심이 있다보니 가계를 처음 오픈 할때부터 2대의 pc를 가계에 두고 손님들에게 서비스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대학생들이 오고 가면서도 pc를 만져 보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전화모뎀으로 통신을 하고 인터넷을 하던 시대니 그럴만도 합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약각은 실망을 했죠.
그래서 제가 대리고 있는 서빙을 보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습니다.
이 아르바이트생들도 경북대학교에 다니는 우수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흥미도 없고 해서 게임부터 가르쳤죠.
그러면서 제가 느끼고 있는 컴퓨터환경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예로 그때만 해도 수강신청을 손으로 작성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 하기를 너희가 군을 제대하고 복학을 할때쯤이면 분명히 컴퓨터로 수강신청을 할 것이라고,
그러자 아르바이트생들은 그렇게 빨리 되지는 않는다고, 하나 같이 이야기 하더군요.
근데 막상 시간이 흘러서 그 친구들이 군을 가고 복학할 정도가 되니 이미 수강신청을 컴퓨터로 하더군요.
제가 선견지명이 좀 있었죠.^.^
그래서 인지 제가 데리고 있던 친구들중에 두명의 친구는 전공과는 무관한 컴퓨터업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쪽에 약간만 상식이 있으시면 아시는 "리니지"의 엔시소프트에 서버관리자로 근무합니다.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약간의 휴식을 갖기 위해서 그 당시로는 거금인 400여만을 주고 컴퓨터일체를 구입했습니다.
펜티엄2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때입니다.
대구에서 부품을 구입할 수 없어서 서울 용산에 전화해서 거금을 주고 조립했죠.
지금까지 저의 아내는 그 당시의 컴퓨터가 그런 거금을 주고 산 것인지 모릅니다.
만약 이 글을 본다면 부부싸움이 나진 않을까 약간 걱정이 되네요^.^
근데 그 컴퓨터가 저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컴퓨터를 조립해 주신분이 예전 부터 안면이 계신 분이었는데
그 분이 저에게 사업을 제안하더군요.
노트북 중고 장사를 해보라는 것입니다.
저도 마냥 노는 것 보다는 제가 재미있어 하는 일 하면서 해 볼 요량으로 중고 노트북장사를 시작했죠.
벼룩시장에 싸고 판다는 광고를 내고나니,
싸고 싶다는 사람은 하루에도 몇명씩 전화가 오는데 중고 물건을 구할 길이 없더군요.
그래서 물건을 구하러 서울,부산으로 뛰어 다녔습니다.
그래도 물건을 구하기는 어렵더군요,
서울의 딜러들도 중고 물건 있으면 자기들한테 팔아라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정도 중고노트북장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데스크탑 컴퓨터쪽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습니다.
1년 정도 그 분과 함께하면서 컴퓨터부품이나 조립등을 배운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1년정도 조립pc를 만들다가 주연테크컴퓨터 대리점을 열었죠.
한2년 정도는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다 인터넷이 활발해지고 홈쇼핑에서 컴퓨터를 팔기 시작하면서
동네에 있는 컴퓨터매장들이 힘들어 지기 시작하더군요.
제가 딱6년을 주연테크를 운영했는데 마지막에는 한달에 2~3대 겨우 팔았습니다.^.^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고 해서 6년만에 컴가계를 접고 가정으로 돌아와서 백수생활을 하게 되었죠.
종종 컴퓨터관계된 일이나 a/s, 그리고 홈페이지도 만들면서 제 용돈 정도 벌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살아서는 너무 나태해지고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컴as수리가계를 할려고 구상중이었습니다.
그러던중 중국에서 한국생유학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사촌누나가 한국을 방문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제 부터가 제가 중국에 어학연수를 온 진짜 이야기입니다.서론이 너무 길었죠~~~
누나가 저에게 중국어학원과 유학원을 해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럴려면 제가 중국어를 조금은 할 줄 아는게 유리하다고 어학연수를 또 권하더군요.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제 인생의 전반전은 끝나고
이제 후반전인데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생각을 굳힌 김에 아내와 공주들에게 저의 생각을 이야기하니 식구들도 한번 해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래서 중국이야기를 들은지 보름만에 여권만들고, 비자만들고 비행기예약하고 해서 이렇게 중국에 6개월 연수를 오게되었습니다.
처음 올때는 어학연수는 부수적이고 중국의 문화나 여기에 있는 유학생들의 생각 같은 것을 아는데 더 큰 뜻을 두었는데,
막상 중국에 와서 며칠을 살고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 또 다르네요.
제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중국과,
단 며칠동안에 느낀 중국과 중국의 유학생들은 저의 사고를 바꾸어 놓는군요.
단 며칠동안에 느낀 중국과 중국의 유학생들은 저의 사고를 바꾸어 놓는군요.
그래서 2일전에 집에 전화해서 저의 중1짜리 공주보고 중국에 유학을 오라고 권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제가 6개월 해보고 저의 자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할려고 했는데
제가 막상 며칠을 있어본 결과 6개월 후는 늦어진다는 생각이 든 때문입니다.
사람이 늦다고 생각할때 그 일을 시작하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의 딸로 부터 전화가 왔는데 오고 싶다는군요.
제가 어리다고만 생각한 자식이 이제는 점점 커 가는 것 같군요.
결정이 나는대로 들어오라고 저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왜 중3 딸을 나누고 중1짜리 딸을 들어오라고 했을까요.
제가 여기서 본 봐로는 중3이면 약간 늦은감이 있습니다.
곧 고등학생인데 여기서 영어와 중국어를 배워서 다시 한국에 가기가 애매하다고 하는군요.
바로 중국에 있는 대학이나 미국에 있는 대학을 생각중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한국대학을 바라본다면 벌써 조금은 늦다는군요.
그래서 초등학교나 중1정도가 딱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생각은 멀지 않은 날 분명히 중국이 한국과 일본을 앞질러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선다는 확신입니다.
제가 막연히 생각한 중국은 아직은 조금은 멀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나 지금 당장은 질서의식이나 절대빈곤층들의 생활이 현지인들이나 관광객들의 눈에는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밑에 깔려있는 큰 저력이 며칠되지 않은 저의 눈에도 조금씩 보입니다.
여기와서 사촌자형덕분에 한국인들이며 40여년 미국에 사신 재미교포분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분들의 몇발짝 앞서가는 생각을 들어면서
"아~ 나는 정말 우물안 개구리 였구나!"
를 실감하고 나의 사고가 이렇게 며칠만에 바뀔지는 저 자신도 몰랐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저도 공부냐 사항파악이냐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일단 공부를 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사항파악이야 공부를 하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4일이었지 않나 쉽네요.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내 힘이 닿는대로 한번 해 볼 생각입니다.
참고로 자녀들 유학을 생각하고 계시는 부모님들은 며칠의 휴가 동안이라도
잠시의 시간을 내어서 자신이 한번 직접 체험을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글을 보시는 분들중에는 중국에 간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런 글을 적고 이야기를 하냐고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글은 꼭 여러분들만 보라고 적는 글이 아니라 서두에도 밝혔듯이
저의 중국경험 일기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제가 생각나는대로 적었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드시지 않더라도 양해바랍니다.
(남의 일기장보시면서 생각이 틀리다고 욕하는 분은 안계시겠지요^.^)
주절주절 적다보니 글이 기네요.
저도 팔도 아프고 이제 또 열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짜이찌엔
주해에서 고급아파트중 하나인 화파신청15층에서 아래를 바라본 아파트 정원(집이야기는 다음에..)
광주 과학성안에 있는 고급 주택단지인 보리산장의 집들입니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비싸고 물을 끼고 있을 수록 비싸고
우리로 치면 다가구 빌라같은 집들이 한집이라는군요.
보통 작은집이 3층이고 큰집들은 엄청 크답니다.
우리돈으로 큰집들은 70~80억 정도 한답니다.
그런데 그런집들이 주인들이 사 놓기만 하고 자신은 안 살고 비어 있다는 거...(투자겠죠^.^)
사촌누나의 앞집은 마카오의 유명한 도박사집이랍니다.
일기 글을 읽고 나니 자신감이 보이네..
내가 우물안에 개구리가 된 느낌이 들더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서 친구들에게도
베풀어주었어면 한다.
건강하고 빠른시일에 만나자. 친구야~~
종종 글과 사진 올려라 간접 경험이라도 해야지 ^^
건투를 빈다.